세계로교회 55년 역사
SEGERO 50TH ANNIVERSARY
현재 부평구 산청로 70(청천동) 번지에서 가까운 105번지에 건평 약 20평의 함석과 슬레이트로 지어진 건물에서 첫 삽을 떴다.
제1대 설립자로 노회에서 파송 받은 유근언 목사와 이호민 장로 외 교인 10여명으로 시작한 백마장 교회는 현재 청천동 지역에서 제일 가는 세계로 교회로 부흥 발전하였으며,
하이파이브 비전 2019를 이루기까지 모든 성도가 전심전력으로 신앙의 토대 위에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제 1대 유근언 목사(1969 – 1972)
척박한 청천동 지역에 백마장교회의 씨를 뿌리다.

교회를 개척할 때인 1969년 청천동 지역은 시골을 연상시키듯 비가 오면 진흙탕 물이 흘러내려 갔고, 주변엔 가옥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맨땅이었다. 특히 개척한 교회는 20평 남짓 슬레이트와 함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며,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렸다. 초창기 함께 예배드렸던 10여명의 성도들은 오로지 신앙과 믿음으로 주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섬겼다. 그 결과 그해 겨울인 1969년 12월 성탄절엔 80여명의 성도가 함께 성탄절 예배를 드리는 등 개척 초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 2대 박상걸 목사(1972 - 1975)
주의 일을 사랑했던 성도들 그리고 청년들의 부흥이 시작되다.

특히 박상걸 목사는 백마장교회 최초의 예배당 건축이라는 사명을 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을 아끼지 않고 많은 수고를 하였다.
그 결과 1973년 8월 건평 56평의 백마장교회를 건축하고, 같은 해 11월 11일 입당 예배를 드렸다. 성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했던
박상걸 목사는 사명에 충실하여 백마장교회를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만들어갔다. 특히 이 당시 40여 명으로 부흥한 청년회의 성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본인의 사역에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제 3대 서영복 목사(1975 - 1977)
은혜의 방편을 잘 사용하였으나 치리와 권면의 어려움을 겪다.

1975년 2월 부임 이후 서영복 목사는 성례식과 심방, 설교준비에 모든 힘을 다 쏟았으며, 그 결과 백마장교회의 부흥이 이어졌고
장로교회의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갔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당회와 뜻이 하나 되지 못했고, 설교의 공개적인 예시로 마찰이 있게 되었다. 결국, 다른 교회를 세워 몇 성도들과 함께 나감으로 백마장교회 최초의 분열 아픔이 시작되었다.
제 4대 송요섭 목사(1977 - 1980)
음악에 조예가 깊었지만, 불협화음을 내고 말다.

교회의 분열 이후 어려움 속에서 1977년 4월 노회로부터 백마장교회로 파송 받은 송요섭 목사는 음악 목회의 첫 주자였다.
그로 인해 백마장교회는 한 번 더 부흥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장로회 정치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당회와의 갈등을 안고 있었고, 당회 정치의 정도에서 벗어남으로 결국 목회의 어려움을 겪게 되어 또다시 백마장교회는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백마장교회는 최대 시련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제 5대 김학범 목사 (1980 - 1982)
상처를 싸매며, 자작 부흥회로 교회를 이끌어 가다

부임 이후 자작 부흥회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쉽고 능력있게 증거하였다. 이로 인해 성도들에게도 소망이 생기게 되었고 주님의 첫사랑을 회복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부임 이후 1년 4개월 만에 성도 수가 300여 명으로 부흥하기에 이르렀다.
부임할 때 3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은혜인 것이다. 특히 선교원 개원 준비를 마친 이후 다른 교회의 청빙 요청은 백마장 교인들에게 아쉬움은 남겼지만 이로 인해 자신감을 심어준 덕에 백마장교회는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제 6대 박윤섭 목사(1982 - 1990)
교인들과 함께 사역하며 교회의 안정과 도약을 이루다.

박윤섭 목사는 겸손한 마음으로 교인들을 잘 끌어안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아갔다. 무엇보다도 만인제사장의 원리에 따라 교회의 직분자 세우기를 먼저 하였다. 당시에 세워진 몇몇 안수집사는 현재 시무장로가 되어 교회와 성도를 위해 앞장서 일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부흥을 위해 전도와 선교를 힘써 강조했고, 교회 건축을 위한 대지 확보와 성도의 부흥에 맞는 예배당 건축을 위해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현재의 예배당의 주춧돌, 선교하는 백마장교회, 500여 명의 성도로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 10월 13일 향년 61세로 주님의 품으로 부름을 받았다.
제 7대 성재권 목사(1990 - 1991)
패기와 경륜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다.

성재권 목사는 철야기도에 열심이었고 100일 기도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기도의 열심이 남달랐지만 부임하여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것을 개혁하고 추진하려는 패기가 백마장교회의 모든 교인을 살피고 당회와 더불어 교회 업무를 추진하는데
경륜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되어 1년 만에 사임을 하게 되었다.
제 8대 김학범 목사(1992 - 2006)
새로운 밀레니엄을 향한 백마장교회의 도약을 이루다.

김학범 목사는 재부임 하면서 먼저 새 예배당 건축의 사명을 가졌으며, 실제로 현재와 같은 예배당을 헌당하였다. 특히 김학범 목사는 인도 선교회를 통해 선교에 앞장섰으며, 말씀연구를 위해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황해노회장으로 취임하여 노회의 발전을 위해
힘썼고, 킹바이블 주석성경책을 발간하여 성도들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해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두란노 교사대학을 열어
교사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일에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제 9대 김형찬 목사(2006 - 현재)
교회의 비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

김형찬 목사는 부임 후 첫 사역의 뜻을 세우고 교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로 시작했다. ‘하이파이브 비전 2019’ 의 다섯 가지 이뤄야
할 목적을 비전으로 제시하여 성도들에게 교회 부흥의 소망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부흥은 전도와 선교 그리고 비전 이룸에
있다고 판단하여 선교사 파송과 해외선교지 교회 건축하는 일, 지역을 섬기는 교회사역과 더불어 비전을 준비하는 사역에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